1980년 5월, 언론은 침묵했고 정부는 진실을 가렸다.
그때, 광주에 들어온 한 외신 기자가 있었다.
위르겐 힌츠페터.
당시 독일 공영방송 NDR의 도쿄 특파원이었던 그는,
“광주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서울의 외신기자들조차 광주에 접근하지 못했던 시기,
그는 한국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도움으로 광주에 잠입한다.
📸 힌츠페터가 본 광주, 그리고 찍은 것들
힌츠페터가 남긴 영상 속에는
- 거리에서 총을 든 시민들
- 병원에 실려 온 사망자
- 군부대의 무차별 발포 장면
이 모두가 담겨 있다.
그는 이 필름을 몰래 머리 염색약 통에 숨겨 서울로 빠져나왔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 방송 전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영상은 독재자 전두환이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 힌츠페터는 광주 방문 이후에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4차례 더 취재했다.
→ 단순한 취재가 아닌 연대의 의지였다. - “내가 본 건 총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 실제 인터뷰 발언 인용으로 감정선 보강 - 그는 독일 기자였지만, 그 누구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믿었다.
🎙️ 힌츠페터가 남긴 말
“광주에서 내가 본 건, 진실을 지키려는 시민들이었어요.”
그는 평생 광주를 잊지 않았다.
죽기 전 유언으로 "내 유해 일부를 광주에 묻어달라" 했고,
현재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 일부가 5·18 민주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택시운전사 그 이후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의 기록과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송강호가 연기한 김사복 씨의 시선,
그리고 힌츠페터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
하지만 영화에서조차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길 바랐다.
“나는 단지 기록자였을 뿐입니다.
진짜 주인공은 광주의 시민들이었습니다.”
✍️ 기억해야 할 이유
힌츠페터는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처음 알린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을 기록했다.
오늘 그는 묻는다.
“당신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카메라를 들 수 있었을까?”
힌츠페터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과 생애, 취재 배경이 궁금하다면
👉 나무위키 – 위르겐 힌츠페터 페이지를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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