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피부를 가르는 순간, 환자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조수들이 팔다리를 붙들었고, 외과의는 최대한 빠르게 손을 놀렸습니다. 마취가 없던 시대, 수술은 살아있는 지옥이었습니다. 빠른 손이 곧 실력인 시대, 속도가 유일한 자비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바뀐 날이 있습니다. 1846년 10월 16일, 보스턴. 한 치과의사가 유리 흡입기를 환자의 입에 가져다 대던 그 순간, 외과학의 역사는 둘로 나뉩니다 — 마취 이전과 마취 이후로.
① 마취 없는 수술 — 공포의 수술대
19세기 초까지 외과 수술은 환자에게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의식이 또렷한 채로 절개와 봉합을 견뎌야 했고, 쇼크로 수술 중 사망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당시 외과의들이 동원한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대량의 술로 감각을 무디게 했지만, 의식을 완전히 잃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고대부터 써온 진통제였지만 용량 조절이 불가능해 과다 복용 사망 위험이 컸습니다.
목 혈관을 압박해 뇌로 가는 혈류를 줄여 잠시 의식을 잃게 했습니다. 뇌 손상 위험이 극심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외과의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은 28초 만에 다리 절단을 끝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손'이라 불렸습니다. 그만큼 빠름이 곧 환자를 살리는 덕목이었습니다.

② 에테르의 발견 — 파티에서 수술실로
에테르(Diethyl ether)는 이미 16세기에 합성된 물질이었습니다. 19세기 초 미국과 영국에서는 에테르 파티(Ether Frolics)가 유행했는데, 젊은이들이 에테르를 흡입하며 웃고 떠들다 넘어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테르를 마시면 몸이 둔해지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 이걸 수술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에 진지하게 접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지아주의 시골 의사 크로퍼드 롱(Crawford Long)은 1842년 에테르로 환자를 마취한 뒤 목의 낭종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고, 세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 오른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보스턴의 치과의사 윌리엄 토마스 그린 모턴(William T. G. Morton)이었습니다.
③ 역사의 날 — 1846년 10월 16일, 에테르 돔
모턴은 수개월간 에테르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개와 금붕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끝에,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외과 과장 존 콜린스 워런(John Collins Warren)에게 공개 시연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워런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허락했습니다.
워런과 의학생들이 가득 찬 수술실에서 모턴이 늦게 도착했습니다. 흡입기를 완성하느라 지체된 것이었습니다. 워런이 비꼬듯 말했습니다. "선생, 자네 친구가 오지 않는군."
목 왼쪽 아래에 혈관 종양이 있는 20세 청년. 수술대에 누워 불안한 눈빛으로 모턴을 바라봤습니다.
모턴이 직접 제작한 유리 흡입기로 에테르를 기화시켜 애보트에게 흡입시켰습니다. 수 분 후, 애보트의 몸이 축 늘어졌습니다. 의식이 사라진 것입니다.
워런이 칼을 들었습니다. 절개, 종양 제거, 봉합 — 환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애보트가 깨어났을 때, 워런이 물었습니다. "통증을 느꼈습니까?" 애보트가 답했습니다.
"긁히는 느낌이 있었을 뿐,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 길버트 애보트, 1846년 10월 16일
수술실을 가득 채운 의학생과 의사들은 경악과 경이로움 속에 침묵했다가, 이내 환호했습니다. 워런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신사 여러분,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 이 날은 이후 에테르 데이(Ether Day)로 불리게 됩니다.

④ 우선권 전쟁 — 영광의 그늘
시연이 성공하자마자 '누가 마취를 발명했는가'를 둘러싼 치열한 우선권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체계적으로 실험하고 공개 시연을 성사시켰습니다. 특허까지 신청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상업화에 실패하고 가난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턴의 스승 격으로, 에테르의 마취 가능성을 먼저 알려준 인물. 이후 자신이 진정한 발명자라고 주장하며 평생 논쟁을 벌였습니다.
1842년 이미 에테르로 수술했지만 발표를 미뤘습니다. 역사는 그를 기억하지만, 세상을 바꾼 공개 시연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역사학계는 공개 시연으로 마취를 세상에 알린 모턴을, 그리고 최초 임상 적용자로 롱을 함께 기억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모두 부와 명예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⑤ 마취의 세계적 확산과 진화
에테르 데이 이후 소식은 대서양을 건너 불과 몇 주 만에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1846년 12월, 영국의 로버트 리스턴이 에테르 마취 하에 다리 절단 수술을 성공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거 완전히 미국식 속임수군 — 아, 속임수가 아니잖아!"
이후 마취의 역사는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⑥ 에테르 돔 — 지금도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
1846년 시연이 이루어진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원형 수술실은 지금도 에테르 돔(Ether Dome)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미국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10월 16일에는 '에테르 데이' 기념 행사가 열립니다.
그 자리에는 이집트 미라 한 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의학자들이 인체를 공부하기 위해 수집한 것으로, 마취가 없던 시절 의학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 에테르 돔 방문 정보
주소: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Boston, MA / 평일 방문 가능 (무료) / 매년 10월 16일 에테르 데이 기념 행사 개최
📌 핵심 정리 — 세계 최초의 수술 마취, 에테르 시연
- ✅ 역사적 시연일: 1846년 10월 16일 — 에테르 데이(Ether Day)
- ✅ 장소: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에테르 돔
- ✅ 주역: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마취) + 외과의 존 워런(수술) + 환자 길버트 애보트
- ✅ 마취 물질: 에테르(Diethyl ether) — 유리 흡입기로 기화·흡입
- ✅ 최초 임상 적용: 크로퍼드 롱, 1842년 (미발표) → 공개 시연 기준으로는 모턴이 세계 최초
- ✅ 역사적 의의: 고통 없는 수술 시대 개막 → 복잡·장시간 수술 가능 → 현대 외과학·마취과학 탄생
자주 묻는 질문 (FAQ)
Q. 세계 최초의 수술 마취는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나요? ▾
1846년 10월 16일,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실(에테르 돔)에서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이 에테르를 이용한 전신 마취 하에 외과 수술을 공개 시연했습니다.
Q. 에테르 마취 이전에는 수술을 어떻게 했나요? ▾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알코올·아편·기절 유도 등 원시적인 방법이 사용됐고, 수술 속도가 빠른 외과의가 유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Q. 에테르 마취를 최초로 시연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공개 시연의 주인공은 치과의사 윌리엄 T. G. 모턴입니다. 다만 1842년 크로퍼드 롱이 먼저 임상 적용했고, 찰스 잭슨이 에테르 효과를 처음 제안했다는 주장이 있어 오랜 우선권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Q. 1846년 시연 당일 어떤 일이 있었나요? ▾
모턴이 유리 흡입기로 환자 길버트 애보트에게 에테르를 흡입시켜 의식을 잃게 했고, 외과의 존 워런이 목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깨어난 애보트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고 말하자 수술실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Q. 에테르 마취 이후 현대 마취는 어떻게 발전했나요? ▾
클로로포름(1847), 코카인 국소마취(1884), 정맥마취제 티오펜탈(1934), 리도카인(1943)이 차례로 등장했습니다. 현재는 전신·부위·국소 마취가 정밀하게 분화된 독립적인 의학 전문 분야로 발전했습니다.
에테르 돔의 그날 이후, 외과의는 서두르지 않아도 됐습니다.
환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됐습니다.
고통이 수술의 전제였던 세상은 그날 끝났습니다.
유리 흡입기 하나가 바꾼, 인류 의학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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