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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힐러리 옆 그 남자 '텐징 노르가이' 이야기

by Mandoo4ea 202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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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최초의 인물은 누구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에드먼드 힐러리를 떠올리지만, 그의 곁에는 언제나 위대한 파트너,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한 명의 위대한 산악인이었던 그의 진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역사상 위대한 업적 뒤에는 항상 최고의 파트너십이 존재하죠. 과학계에 왓슨과 크릭이 있었다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는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주로 힐러리 경에게 집중되었고, 그의 옆에서 함께 역사를 만든 텐징 노르가이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오늘은 바로 그 숨겨진 영웅, 산의 아들 텐징 노르가이의 삶과 열정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

셰르파, 산의 아들 텐징 노르가이 🏔️

텐징 노르가이는 1914년, 에베레스트산 인근 네팔 쿰부 지역의 셰르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남걀 왕디'였지만, 한 라마승의 권유로 '부유하고 행복한 신도'라는 뜻의 '텐징 노르가이'로 개명했다고 해요. 신기하게도 이름처럼, 그는 산악인으로서 큰 명성과 행복을 얻게 되었죠.

그의 어린 시절은 정확한 기록이 많지 않아요. 심지어 본인도 정확한 생년월일을 몰라, 훗날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1953년 5월 29일을 자신의 생일로 삼았다고 합니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19세가 되던 해, 그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인도의 다르질링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히말라야 원정대의 포터로 일하며 산악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 '셰르파'는 짐꾼이 아니에요!
흔히 '셰르파'를 '고산 등반 안내인'이나 '짐꾼'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원래 '셰르파'는 티베트계 네팔 소수민족의 이름입니다. '동쪽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대대로 고산지대에 살아왔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고소에 매우 강합니다. 이들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가 쓰일 수 있었죠.

 

에베레스트를 향한 끈질긴 도전 🧗

텐징 노르가이에게 1953년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던 베테랑 산악인이었어요. 1930년대부터 여러 원정대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고, 특히 1952년 스위스 원정대에서는 등반 파트너와 함께 당시 최고 도달 고도인 8,599m까지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53년 영국 원정대는 그의 일곱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이었습니다. 39세의 나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도전 앞에서 그는 "이번에 정상에 오르거나, 오르다 죽게 될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끈기와 열정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다르게 쓰였을지도 모릅니다.

연도 주요 원정 역할 비고
1935년 영국 정찰 원정대 포터 에베레스트와의 첫 만남
1947년 캐나다인과의 불법 등반 시도 등반가 정상 등정에는 실패
1952년 스위스 원정대 등반대원 최고 도달 고도 신기록(8,599m)
1953년 영국 원정대 등반대원 에드먼드 힐러리와 정상 등정 성공

 

정상에서 쓴 역사,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들 ✨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는 드디어 해발 8,848m,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의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텐징은 정상에 작은 초콜릿과 과자를 묻으며 산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요. 정상에서 찍힌 사진에는 텐징의 모습만 남아있고, 정작 힐러리의 사진은 없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누가 먼저 정상에 올랐는가'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생 "우리는 함께 정상에 올랐다"라고 말하며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주었습니다. 힐러리는 "텐징이 카메라 다루는 법을 몰랐고, 그곳은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 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라고 유쾌하게 설명하기도 했죠.

⚠️ 영광 뒤에 가려진 차별
등정 성공 후, 영국 여왕은 힐러리에게는 기사 작위를 수여했지만 텐징에게는 조지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는 당시 만연했던 인종과 계층에 대한 차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텐징은 네팔과 인도 양국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의 업적은 훈장이나 작위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산악인의 전설로 남다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텐징 노르가이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다르질링에 설립된 히말라야 산악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후배 산악인 양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산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세상에 알렸죠.

그와 힐러리의 우정은 평생 이어졌고, 두 사람은 함께 네팔 셰르파족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텐징 노르가이는 1986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도전 정신과 인간적인 매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네팔 루클라 공항의 이름이 '텐징-힐러리 공항'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

텐징 노르가이 핵심 요약

✨ 출생과 배경: 네팔 쿰부 출신의 셰르파 민족으로, 산악인으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 위대한 도전: 7번의 도전 끝에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 파트너십의 상징: '누가 먼저냐'는 논란 속에서도 "함께 올랐다"는 말로 진정한 동료애를 보여주었습니다.
🏆 영원한 유산: 등정 이후 히말라야 산악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과 셰르파 권익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정말 힐러리와 텐징 중 누가 먼저 정상에 올랐나요?
A: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동시에' 정상에 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힐러리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몇 발자국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다고 밝혔지만, 이는 텐징이 로프를 단단히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공을 텐징에게 돌렸습니다. 결국 완벽한 팀워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텐징 노르가이의 국적은 네팔인가요, 인도인가요?
A: 텐징은 네팔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인도 다르질링에서 보냈고 인도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사망 당시에는 네팔-인도 복수 국적이었으며, 1953년 등정 당시에는 스스로를 네팔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Q: 텐징 노르가이의 자녀도 산악인이 되었나요?
A: 네, 아들인 '잠링 텐징 노르가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악인이 되었고, 1996년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텐징 노르가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가느냐가 아닐까요? 그의 겸손함과 위대한 파트너십을 기억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칩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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