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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과학기술

세계 최초의 마취제 사용

by Mandoo4ea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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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수술의 혁명, 마취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환각 파티에서 수술실까지, 비명과 고통을 잠재운 위대한 발견

우리는 오늘날 수술을 앞두고 '마취'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전신마취든 부분마취든, 끔찍한 고통 없이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의학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수술실은 비명과 공포가 가득한, 살아있는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수술의 성공 여부가 외과의사의 속도에 달려 있었고, 환자는 모든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며 쇼크로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 끔찍한 시대를 끝낸 위대한 발명, 인류 최초의 마취제는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그 시작은 놀랍게도 유흥을 위한 '환각 파티'에 있었습니다.

비명과 절망의 수술실

마취제가 없던 시대, 수술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맹장염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조차도 환자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직결되었습니다. 환자의 몸을 단단히 붙잡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절개하고, 뼈를 잘라내고, 봉합하는 것이 외과의사의 유일한 미덕이었습니다. 환자들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에 취하거나, 머리를 가격당해 의식을 잃거나, 아편과 같은 불완전한 진통제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효과가 미미했고, 수술 중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쇼크나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의학계는 인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새로운 방법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우연한 발견과 집념의 순간들

1. '웃음 가스'와 '에테르 파티'의 유행:

19세기 초, '웃음 가스(아산화질소)'나 '에테르'를 흡입하고 환각 상태를 즐기는 파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가스에 취해 비틀거리다 넘어져 상처를 입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 기묘한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이들이 바로 마취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2. 선구자들의 등장:

크로퍼드 롱 (Crawford Long): 1842년, 미국의 외과의사 크로퍼드 롱은 '에테르 파티'에 참여했다가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는 1842년 3월 30일, 제임스 베너블이라는 환자의 목에 있는 종양을 에테르로 마취한 후 고통 없이 제거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기록상 최초의 에테르를 이용한 외과수술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발견을 학회에 바로 발표하지 않아 '최초'의 영예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호러스 웰스 (Horace Wells): 1844년, 치과의사 호러스 웰스는 '웃음 가스' 쇼를 관람하던 중, 가스를 마신 참가자가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영감을 얻은 그는 다음 날, 동료에게 부탁해 웃음 가스를 흡입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랑니를 뽑는 실험을 감행했고,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진행한 공개 시연에서 환자가 마취에서 일찍 깨어나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3. 역사적인 공개 시연: 1846년 10월 16일 '에테르의 날'

마취의 역사에 공식적인 획을 그은 인물은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 (William T. G. Morton)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찰스 잭슨 교수의 조언에 따라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수많은 동물 실험과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거쳐 확신을 얻은 모턴은 1846년 10월 16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실에서 역사적인 공개 시연을 진행합니다.

외과의사 존 콜린스 워런이 집도하는 길버트 애벗이라는 환자의 목 종양 제거 수술이었습니다. 모턴이 직접 고안한 유리 흡입기로 환자에게 에테르를 흡입시키자 환자는 곧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수술이 끝난 후 깨어난 애벗은 "칼이 살을 긋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을 뿐,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술을 참관하던 의사와 학생들은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고, 워런 박사는

"신사 여러분,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Gentlemen, this is no humbug)"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날은 훗날 '에테르의 날(Ether Day)'로 불리며 인류가 수술의 고통을 정복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의학의 혁명을 이끌다

모턴의 공개 시연 성공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에테르 마취는 외과수술에 즉각적으로 도입되어 수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 외과 수술의 발전: 의사들은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고, 복잡하고 정교한 수술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복부 수술, 뇌 수술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 의학이 발전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 환자의 생존율 증가: 수술 중 쇼크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환자들은 더 이상 수술을 죽음과 동일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새로운 마취제의 등장: 에테르는 인화성이 강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이 클로로포름의 마취 효과를 발견했고,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 시 클로로포름을 사용하면서 마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마취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새로운 시대의 서막

최초의 마취제 사용은 단순히 하나의 의학 기술 발전을 넘어, 인류를 수술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환각 파티라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된 작은 실마리는 선구자들의 예리한 관찰력과 끈질긴 집념을 통해 인류 전체의 삶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에테르의 날' 이후,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고통 없는 수술의 시작은, 과학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준 희망의 증거이자, 인간 존엄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류 역사의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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