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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과학기술

페니실린 발견, 플레밍 뒤에 숨겨진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

by Mandoo4ea 2025.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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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 발견, 플레밍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던 기적의 약 페니실린 뒤에 숨겨진 공동 연구자들의 놀라운 기여를 파헤쳐 봅니다.

혹시 감기나 상처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항생제 처방받아본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되는 항생제, 그중에서도 '페니실린'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기적의 약이라고 불립니다. 보통 페니실린 발견! 하면 '알렉산더 플레밍'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는데요. 하지만 플레밍의 극적인 발견 뒤에는 페니실린을 진짜 '약'으로 만들어낸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그 잊힌 공동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

운명적인 발견, 그러나 절반의 성공 🤔

이야기는 1928년,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연구실에서 시작됩니다. 휴가를 다녀온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페트리 접시에 푸른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곰팡이 주변의 세균들이 모두 녹아 없어진 걸 목격하게 되죠. 실수와 우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견의 순간이었습니다.

플레밍은 이 푸른곰팡이가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며, 이것이 만들어내는 물질이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추출하고 정제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즉, 세균을 죽이는 물질을 '발견'했지만, 이걸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약'으로 만들지는 못했던 거죠. 그의 연구는 한동안 학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히게 됩니다.

💡 알아두세요!
플레밍의 발견은 정말 중요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페니실린을 불안정한 상태로 소량만 얻을 수 있었어요. 실제 치료에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효과도 불확실했죠.

 

바통을 이어받은 옥스퍼드 팀의 등장 👨‍🔬

플레밍의 연구가 잊힌 지 약 1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수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두 과학자,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에른스트 체인(Ernst Chain)이 플레밍의 논문을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이들은 페니실린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동료 과학자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와 함께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합니다. 이들은 페니실린을 안정적으로 추출하고 정제하여 약효를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으로 매달렸죠. 정말 쉬운 과정이 아니었어요. 수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드디어 동물 실험과 임상 시험에 성공할 수 있는 소량의 페니실린을 얻게 됩니다.

연구자 주요 기여 역할
알렉산더 플레밍 페니실린의 항균 효과 최초 발견 발견자 (Discoverer)
하워드 플로리 & 에른스트 체인 페니실린 추출, 정제 및 치료 효과 입증 개발자 (Developers)
 

대량 생산의 길을 연 또 다른 영웅들 🦸‍♀️

하지만 전쟁 중인 영국에서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플로리와 히틀리는 더 큰 생산 시설과 지원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페니실린 대량 생산의 길을 연 또 다른 숨은 주역들을 만나게 되죠.

'몰디 메리'와 '페니실린 걸스' 📝

미국 농무부 연구소의 과학자 메리 헌트(Mary Hunt)는 어느 날 시장에서 사 온 멜론에 핀 곰팡이가 유난히 페니실린 생산량이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몰디 메리'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의 발견 덕분에 페니실린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죠.

또한, 대량 생산 공정 개발에는 수많은 여성 과학자와 기술자, 이른바 '페니실린 걸스(Penicillin Girls)'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최적의 곰팡이 배양 조건을 찾고, 생산 공정을 관리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할 페니실린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 부상병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종전 후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병의 공포에서 해방시켰습니다.

⚠️ 잊지 말아야 할 사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플레밍, 플로리, 체인 세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진정한 '기적의 약'이 되기까지에는 이름 없이 헌신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페니실린 영웅들 한눈에 보기

최초 발견자: 알렉산더 플레밍
핵심 개발자: 하워드 플로리 & 에른스트 체인
대량 생산 기여자: 메리 헌트 & 페니실린 걸스

자주 묻는 질문 ❓

Q: 페니실린은 정말 우연히 발견되었나요?
A: 네, 플레밍이 휴가에서 돌아와 우연히 페트리 접시에 핀 푸른곰팡이와 그 주변의 죽은 세균을 관찰한 것이 발견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우연을 놓치지 않은 플레밍의 날카로운 관찰력 덕분이었죠.
Q: 플레밍 혼자서 페니실린을 만든 것이 아닌가요?
A: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효과'를 발견했지만, 치료 가능한 '약'으로 개발한 것은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이 이끈 옥스퍼드 팀입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페니실린은 실험실 속 발견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Q: '페니실린 걸스'는 누구인가요?
A: 제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 대량 생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 과학자, 기술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연구와 생산 현장에서 묵묵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페니실린의 이야기는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여러 사람의 끈기 있는 협력과 헌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멋진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혹시 이 이야기 외에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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